민철옹과 송회장님을 떠나보내며-라껠의 야구의 추억 라껠, 야구에 미치다


(대전=연합뉴스) 양영석 기자 = 한화 정민철이 12일 오후 대전 한밭야구장에서 열린 은퇴식에서 동료 선수들에게 은퇴 헹가래를 받고 있다.2009.9.12



어릴 적 딸 둘만 있던 아빠에게 난 아들이 되어드리고 싶었다.

친가건 외가건, 모두 집에 아들 하나씩 있는데 우리집만 딸만 둘.


아빠는 딸딸이 아빠라고 불렸다.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살던 가부장적인 집에서 딸 둘만 낳았다는 것이 아버지에게는 적잖은 부담감이라는 것을 어린 나이에도 눈칫것 알 수 있었다.


"이 놈이 고추하나만 달고 나왔으면 얼마나 좋누?"


를 혼잣말 속삭이듯 내뱉던 할머니. 그러한 말들이 나에게는 짓지도 않은 죄를 범한 피의자의 신분으로 화살이 되어 돌아왔다.


그 섭섭함과 부담감을 내가 덜어드리고 싶었다.


그래서 내가 더 사내아이들처럼 개구지게 굴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빠, 우린 어딜 응원해야해?"

일요일 오후2시면 공중파에서 해주는 중계를 보며 아버지께 물었다.

"응, 우린 충청도에 사니까 빙그레를 응원해야해."

그렇게 충청도에 태어나 산다는 이유로(?) 숙명적으로 나는 빙그레 팬이 되었다.

인형보다는 야구시청을 하는게 아빠 곁에서 조금이라도 더 있을 수 있어서 야구의 룰을 배웠고,

아빠가 응원하는 빙그레팀을 응원해야 아빠와 아들이 느낄 수 있는 사내들만이 갖는 공감대를 느끼고 싶어서

더 열심히 응원했다.




아직도 기억나는 건 아버지와 두딸이 함께 야구장을 가는 날들이다.

집이 대전과는 거리가 있는 곳이라 차를 끌고 한시간 반을 가야 한밭구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지금이야 고속도로가 생기고 길도 좋아졌지만 차동고개를 넘어 공주를 거쳐서 대전으로 향할 수 있었던 때다.

엄마가 경기 재미있게 보라며 싸준 김밥을 무릎에 놓고 집어 먹으면서 경기를 보았다.

꼭 경기를 위해 가는 것이 아니라, 딸들과 아빠의 피크닉이었다.

경기 끝나면 아빠는 독수리 인형도 사주셨다.

책장마다 독수리들이 사이즈별로 있었는데 지금은 어디로 사라져버렸는지 못내 아쉽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면 아버지는 꼭 유성터미널 근처의 베스킨라빈스에서 쿼터 사이즈 아이스크림을 테이크 아웃해서

차안에서 딸들과  나눠 드셨다.


내가 스푼으로 떠들이면 아버지께선 "아~"하고 입 벌리시고...


경기 응원의 고단함 때문이었는지, 운전석 뒷자석의 소녀들은 쌔근쌔근 잠들어 있고 어둑해서 도착한 아파트 주차장에 도착해서야

"다 왔다. 일어나."하고 깨우셨다.

 



아직도 딸들이 좋아하는 야구 경기를 보게 해주려고 차 끌고 우리를 태우고 그 먼곳 까지 운전하시면서 웃으시던 모습이 선하다.



십여년이 훌쩍 지나고 아버지는 쓸쓸히 고향에서 딸들 오는 날만 기다리시고 있다..


금이야 옥이야 했던 딸들은 바쁘다며 특별한 일 외에는 집에를 가려하지 않고,


집에 간다해도 어릴 적 느꼈던 애틋한 감정들도 없다.


세월이 아버지와 딸 사이를 갈라놓은 것인지,


머리가 크고 나니 부비적대던 어린 딸들의 행동이 부끄러워졌는지, 무엇이 부녀사이의 벽을 만들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송진우, 구대성, 정민철을 보면 아버지와 나, 그리고 내 동생이 나누었던 추억들이 떠올른다. 얼굴에 미소가 드리운다.

 


꼬마 시절부터 그들은 나의 환호성에 함께 살아가던 이들이다.


한화라는 둥지 이외에는 떠난 적 없는 그들이라서 다른 기라성 같은 투수들이 있어도(그런 사람들이 있을지 의문이지만)

그들의 얼굴을 너무 많이 보고 자라서, 삼촌 같은 가족같은 이들이다.


길거리에서 마주치면 "삼촌 어디가요?"물으면
잘 만났다면서 내 손에 만원이라도 용돈을 쥐어줄 것 같은 친근한 사람들인 것이다.


그러한 삼촌들이 마운드에 설 때면 그때의 행복하던 시절의 추억도 같이 떠오르면서 아버지께 죄송한 마음이 동시에 든다.

내가 어떻게 해야 아버지의 늙어가는 얼굴에
웃음꽃을 피워드릴지 머리로는 알지만 가슴과 행동은 움직이지 않는 불효녀가 되었기 때문이다.

송회장이 은퇴한다고 했을 때, 그가 마운드에서 서는 모습을 슬퍼한게 아니라,

어쩌면 그만큼 나도 나이가 들었고, 그때로 되돌아갈수 없다는 사실을 인지해야만 하는 사실이 싫었다.


자식에게 하나라도 더 해주고 싶어했던 아버지는 계속되는 사업 실패로


딸들에게 "미안하다"라는 말만 되풀이하는 앵무새가 되어버렸고


김밥을 싸주며 "재미있게 놀다와~"라고 말씀하시던 어머니는 하늘나라에 계신다.


그리고 그들의 딸은 외로운 아버지를 보면서 안타까워하지만 다가가가지 않는 겁쟁이가 되었다.


나는 송회장님이, 민철오빠가 마운드에서 절대 죽지 않는 불사조이길 믿으면서

언제나 어릴 적 가족들과 아무 걱정없이 살던 그때로 돌아가고 싶은 거였다.


그래서 그 마운드에 나의 소중한 기억들이 꾹꾹 묻혀 잘 보관될꺼란 생각도 했고....





지금의 내 모습이 아닌 마냥 행복한 어린 아이가 관중석에 있을거란 생각도 이젠 접어야한다.

 

오늘..


비도 오고..


왜 이렇게 맘이 짠한지..

2009년 9월 12일 토요일 새벽.
호가든 혼자 맥주를 마시며

P.S-송회장님 은퇴식이 23일이란다. 평일이라서 부득이하게 휴가내고 가야겠다. 에휴...가슴이 많이 에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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