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 라껠, 읽다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 - 신정아를 생각하며

신정아와 변양균.
노무현 정권 말기, 두사람의 애정 행각에 신문과  TV는 호들갑을 떨고 있었다.
신정아의 학력 위조 포커스에 벗어나 그녀와 에르메스, 그리고 돈의 출처 등 시시콜콜한 그녀 사생활 모두 속보랍시며 내보내고 있었다.

심지어는 둘이 주고 받았던 이메일, 호텔에서 통닭시켜 먹은 것 까지 신문 지면에 실었다.
정계 막강한 실세와 젊은 여교수의 사랑(혹은 불륜) 사건은 심심하던, 정말로 "꺼리없던" 대한민국 뉴스에 핑크빛 놀이거리였다.

사람들은 클린턴과 르윈스키의 스캔들이 대한민국에서도 이루어지길 치성들여 기도들인 것 같다. 부흥회라도 했던지.
대중들이 소설속에서 느꼈을 법한, 상상했던 일들이 정말로 대한민국 땅에서 이루어지이다.
그러니 어찌 흥미롭지 않을 수 있을까?

사람들의 호기심과 관음증의 수위가 높아질수록 신정아는 그렇게 한풀한풀 강제로 벗겨지고 있었다.
벗겨짐이 위태하다고 느꼈을 때, 오후에 배달되는 문화일보를 펴든 순간...대중의 우매함과 몰상식함의 정점을 찍었다.
혹은 미디어의 황색 저널리즘의 파괴력마져 느끼는 순간이었다.

그녀의 누드사진이 신문에 실린 것이다.(물론 모자이크 처리가 되었지만 말이다.)
수줍은 듯, 부끄러운 미소를 머금고 카메라 렌즈에 선 모습.
예술을 위해서 찍었는지, 아니면 자신의 모습을 나타내려 찍었는지, 그녀 주장대로 합성인지..어느 하나 밝혀진 것 없이
미술계 거장의 집에서 찍은 그 사진은 그녀를 가랑이를 벌린 요부로 기정 사실화 했다.

"그녀는 그렇게 자신의 명예욕을 위해 그곳에 옷을 벗고 서 있었다."라고 쓰여지지 않았지만 언론의 논조와 흐름은 대중들을 그쪽으로 유도하고 있었다.

신정아의 개인 인격은 난도질 당하고 있었다.


변양균과 신정아의 사랑. 정말 진실된 사랑이었을 수 있잖니.
진실된 사랑도 그 대상이 유부남이었기에 문제(간통이라는 쓰레기 같은 말도 안되는 악법은 어서 사라져야 한다.)였을 수 있지만, 두 당사자의 이야기는 무시한 채, 변양균은 젊은년에 놀아난 고위관리였으며 신정아는 출세한번 해보겠다고 아양떠는 젊은 년으로 비춰지고 있었다. 
그 사람들을 폄하할 권리가 대중에게 있는 것인가?
그녀를 그렇게, 아니 대중의 눈을 그쪽으로 돌리게 만든 언론. 언론은 개인에게 무자비한 폭력을 행사하는 그 대단한 권리는 도대체 어디에서 나오는 것인가?

카타리아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를 보면서 신정아가 생각이 났다.
그녀 자신의 진실은 저 너머에 묻혀있고 대중이 상상하고 바라는 이미지대로 언론은 조장하고 있었다.
카타리나가 왜 살인을 저지를 수 밖에 없었나 하는 문제는 지워버리고 어떻게 하여 값 비싼 집에서 사는가, 차를 타고 무슨 짓을 했나..하는 시시껄렁한 사실에만 집중을 한다.

골치 아픈 사건이 일년 반쯤 지나고, 신정아가 문화일보 사진이 합성이라는 것을 밝히기 위해서 수감 중임에도 성형외과에서 정밀도 검사를 받았다는 기사를 보았다. 그녀가 진실을 밝히고자 애쓰는 사실은 누드사진 때의 그 난리법석과는 반대로 아주 조그맣게 지면을 조용히 채우고 있었다. 그녀를 생각하는 나는 씁쓸함을 느낀다.


♪ Sting - Insi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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